대학원 시절, 수업에 늦을까 서둘러 택시에 올랐다. 기사와 잠시 이야기를 나누던 중, 그는 갑자기 박카스와 알약 하나를 건네며 말했다.
“손님들, 피곤하시니까 하나씩 드세요.”
순간 마음이 흔들렸지만, 이상하게도 손이 쉽게 가지 않았다. 어릴 적 **‘남이 건네는 음료는 함부로 마시지 말라’**는 엄마의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나는 받은 것을 손에 쥔 채 가만히 있었다.
차는 무사히 학교에 도착했고, 나는 평소처럼 기사에게 인사를 하고 내렸다. 손에는 여전히 박카스와 그가 영양제라고 한 알약이 들려 있었다. 지금이라면 차 번호를 확인하고 신고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당시에는 내가 범죄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을 분명히 하지 못했다.
당시 ‘가짜 택시 기사’가 손님에게 약을 타서 범죄를 저지른다는 이야기가 떠돌고 있었지만, 대낮과 익숙한 공간은 그런 가능성을 멀게 느끼게 했다. 그날의 경험은 기억 속 일상적인 에피소드와 아슬아슬한 위험 사이 어딘가에 걸쳐 있었다.
만약 그때 음료를 주저 없이 마셨다면, 혹은 엄마의 말을 떠올리지 않았다면 내 삶은 전혀 다른 경로로 흘러갔을지도 모른다.
여성의 불안은 과장된 것이 아니다
2017~2021년 강력범죄 피해자 중 83.2%가 여성, 성폭력 범죄 피해자의 87.3%가 여성이라는 통계는 여성의 일상적 불안이 현실에 근거한 것임을 보여준다.
범죄에 대한 두려움은 창문 틈으로 스며드는 찬바람처럼 일상 속에 스며든다. 혼자 자취하던 대학 동기는 밤에 열린 베란다 창틈으로 침입하려던 남성으로부터 가까스로 벗어난 경험이 있다. 만약 가해자가 약품을 사용했다면, 소리조차 지를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성들이 느끼는 불안은 단순히 사건으로만 설명되지 않는다. 택시를 탈 때, 캠핑을 혼자 할 때, 집에서 혼자 있을 때조차, 여성들은 늘 미묘한 긴장 속에 놓인다.
혼자 캠핑을 갔던 날, 근처 남성들이 한참 동안 나를 바라봤다. 그날 밤 나는 휴대폰 긴급신고를 켜고, 호신용 면도칼을 머리맡에 두고 잠을 청했다. 집에서도 술에 취한 사람이 비밀번호를 누르거나, 의심스러운 집주인 때문에 카메라 설치 여부를 확인하는 등 사소한 순간에도 긴장과 불안은 계속된다.
“모든 남성이 범죄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점은 모든 남성이 범죄자가 된다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누가 범죄를 저지를지 알 수 없다는 점, 언제 성적 피해를 입을지 예측할 수 없다는 점이다. 박카스를 건넨 택시 기사도 평범한 사람일 수 있지만, 여성에게는 늘 경계해야 하는 상황이 생존과 직결된다.
작가 리베카 솔닛은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에서 이렇게 말했다.
“여자들은 늘 강간과 살해를 두려워하며 산다. 중요한 것은 모든 남자가 범죄자라는 것이 아니라, 모든 여자가 그런 두려움을 안고 살아간다는 점이다.”
일상 속 불안, 사회적 공감이 필요하다
여성들이 느끼는 일상적 긴장과 공포는 단순한 개인 경험이 아니다. 택시 안에서 받은 박카스와 알약, 혼자 캠핑을 하며 느낀 시선, 집에서의 사소한 위협까지 모두 일상 속에서 반복되는 위험과 연결된다.
전문가들은 여성의 불안을 단순한 과민함으로 치부하지 않고, 사회적 구조와 환경 개선을 통한 공감대 형성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여성들이 매일 느끼는 불안을 줄이고, 안전하게 일상을 누리려면 개인의 주의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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