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7시, 경기도 한 신도시에 사는 30대 학부모 A씨의 하루는 병원 예약 전쟁으로 시작된다. 집 근처 소아청소년과가 잇따라 문을 닫으면서 이제는 차로 40분 거리의 의원을 찾는다. 진료 시작은 8시 30분이지만, 도착했을 때 이미 대기 명단에는 30명이 넘는 이름이 적혀 있다. 이른바 ‘오픈런’이 일상이 된 풍경이다.
저출생 시대라지만 병원 앞 줄은 오히려 길어지고 있다. 아이 수가 갑자기 늘어서가 아니다. 소아청소년과 의료기관과 전문 인력이 빠르게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건강보험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폐업한 소아청소년과 의원 수는 신규 개원 수를 크게 웃돌았다. 단순히 병원 간판이 사라진 것에 그치지 않는다. 최근 학술지에 발표된 분석에서는 최근 몇 년간 폐업한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중 상당수가 더 이상 아이 진료를 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는 다른 진료 분야로 이동했고, 일부는 현장을 떠났다. 결과적으로 전문 인력 3명 중 2명 가까이가 소아 진료에서 이탈한 셈이다.
현장에서는 “감소가 아니라 기반 약화의 시작”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남아 있는 병원에 환자가 몰리면서 대기 시간은 길어졌고, 야간과 휴일 진료 공백도 반복되고 있다. 이는 수요 폭증이 아니라 공급 축소에 따른 현상이라는 설명이다.
그렇다면 아이를 진료하던 의사들은 어디로 향했을까. 요양병원이나 일반 의원으로 이동해 성인 환자를 보는 경우가 늘고 있다. 일부는 피부·미용 등 비급여 중심 분야로 진출했다. 상대적으로 근무 환경이 안정적이고 수익 구조 예측이 가능하다는 이유에서다. 간판은 그대로 두고 성인 진료 비중을 크게 늘린 사례도 적지 않다.
전문가들은 단순히 출생아 수 감소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현재 소아청소년과의 진료비 구조는 다른 과에 비해 낮은 편이며, 보호자 상담과 설명에 많은 시간이 필요함에도 보상 체계는 충분하지 않다는 지적이 이어진다. 여기에 잦은 민원과 분쟁 부담까지 더해지면서 현장의 피로도가 높아졌다는 분석이다.
지역 격차도 문제로 떠오른다. 일부 지방에서는 반경 수십 킬로미터 안에 소아청소년과가 없는 ‘의료 공백 지역’이 나타나고 있다. 응급 상황이 발생하면 먼 거리의 대도시 병원으로 이동해야 하는 사례도 보고된다.
정부는 야간·휴일 진료 기관 확대와 장기적 인력 확충 방안을 내놓고 있지만, 현장에서는 지속 가능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 단순히 인원 수를 늘리는 것만으로는 해결이 어렵고, 근본적인 보상 체계와 운영 구조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크다.
전문가들은 소아 진료를 시장 논리만으로 접근하기보다 사회 필수 인프라로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평소에는 조용해 보여도, 위기 상황에서 반드시 필요한 기반이라는 것이다. 수가 체계 개편, 야간·휴일 대기 비용 지원, 지역 네트워크 강화 등이 주요 과제로 거론된다.
아이를 위한 의료 환경이 유지되지 않는다면, 그 부담은 결국 가정과 지역사회 전체로 돌아온다. 소아청소년과 감소 현상은 단순한 통계 수치를 넘어, 우리 사회가 어떤 기반 위에 서 있는지를 묻는 문제로 확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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